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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06호]13 2004-11-30 21:36:00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있다
몇시간을 바라보고 있지만 천장은 그냥 그대로의 모습이다
며칠을 보고있는다 해도 변하는건 없으리라
 
눈을 감았다
 
 
몇년을 함께했던 그녀도 변함이 없었다
웃는 모습도 변함없이 그대로였고
나에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모든게 그대로였다
그런 그녀가 난 지겨워 졌던 것일까
 
아님 그런 그녀가 두려웠던 것일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난 계속 변해갔다
일년 이년 시간이 내 몸으로 스며들수록
난 급속도로 변해갔다
어쩌다 변화되는 엄청난 속도에 끌려가다 정신이라도 차릴때면
내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어떤것인지 구분할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똑같은 미소로
똑같이 날 바라보고있었다
 
나 자신은 너무나 변해가는데 변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
난 그런 그녀가 두려웠다
그 변함없는 미소에선 섬뜩함마져 느껴졌다
 
'넌 어째서 변하지 않는거지...'
 
 
 
 
"우리 헤어지자.."
 
"무슨소리야 그게..갑자기 헤어지자니..."
 
"그만 만나자 우리..."
 
"도대체...느닷없이...이유가..이유가..뭔데.."
 
"이유?..없어..그냥..니가 싫어.."
 
 
 
몹시 취했던 난
그녈 불러냈고 헤어지자고 말했다
단 몇분만에 모든것은 끝났다
모든것이 얼어 붙을듯 차가운 바람이 쉴새없이 불어대고 있었고
그 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은 날리고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그녀는 계속해서 뭔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져서인지 무슨말인지 잘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몇번이고 날 붙잡았지만
몇번이고 그녀를 뿌리치고 뒤돌아섰다
 
몇발자국을 걸었을까
난 뒤돌아 그녀를 보았다
쓰러져 눈물을 흘리며 차갑게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차갑게 나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여전히
변함없는 슬픈미소
나를 바라보는 차가운 눈빛 
그대로였다 
여전히 그대로

여전히 그대로 슬픈미소를 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넌 어째서 변하지 않는거지...'
 
 
나의 마음은 더욱 얼어붙어버렸고
더 이상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나는 비틀거리며 힘겹게 집으로 향했다
 
 

 
 
몇시간이나 잠들었었을까
눈을뜨자
보이는건 천장

핸드폰 폴더를 열고 액정을 보았다
 
'부재중전화 13통'
 
모두 한사람에게 온 전화였다
 
지금 시각 오후 1시
이별후 13시간이란 시간이 흘렀다
창밖에선 어느덧 눈이 내리고 있었다

꽤 오랜시간 잠들어 있었나보다
눈은 내리고 있었지만 
오랜시간 잠에서 깬후 바라본 천장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난 또 다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있다
 
"오빠 오빠! 그거알어?!"
 
동생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까 어떤여자가 우리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나봐!..
 밖엔 지금 그거 때문에 난리도 아닌거 같던데..."
 
 
 
 
 
 
이별후 13시간
 
난 여전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