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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호]나를 따뜻하게 하는 너 2006-01-08 21:09:00

여기 서 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본다

 

'3:25 AM'

 

새벽 3시 25분

주위엔 이젠 더 이상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다

가끔 도로에 차들과 찬바람만이 하나 둘씩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만 돌아갈까'

 

여기 서 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곳은 너의 집 대문이 보이는 골목 한복판

그래 내가 서 있는 이 곳은 겨우 너의 집 대문이 보이는 골목일 뿐이다

아침에 기상캐스터의 말로는 오늘이 올겨울 가장 추운날씨라고 했었다

영하 20도라던가

가장 추운날씨인데 영상 20도일리는 없으니 영하 20도가 맞을거다

그런 추위다

나는 그런데 여기 왜 서 있는걸까

몇시부터 서 있던 걸까

 

'술을 마시다 친구들과 헤어진게 12시쯤이니까 버스를 탄게..'

 

영하 20도의 기온으로 인해 머리속까지 얼어버린걸까

좀처럼 생각이 나질않는다

그저 머리속에서 한마디 말만 반복적으로 울리고 있을뿐이였다

 

'니가 보고싶어'

 

 

잠바의 지퍼를 올린다

워낙 조용한 새벽이라 지퍼가 잠기는 소리가 골목으로 울려퍼진다

왜 난 여지껏 지퍼를 올리지 않고있었던 걸까

이렇게나 추운데 이런

술이 조금씩 깨고 있어서 인지 머리가 아파오며 추위가 엄습해온다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본다

여전히 내 옆에서 해 맑게 웃고 있는 너

여전히 내 핸드폰의 액정을 차지하고 있는 너

1번을 꾹 누르고 있으면 전화연결이 될 너

물론 이제는 더 이상 받지 않는 너지만..

 

'나쁜년...그런 멋대로인 이별통보는 하지말라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뒤적거려 담배를 꺼낸다

마지막으로 남은 담배 한까치

라이터로 불을 붙여보려하지만 새벽의 찬바람 때문인지 좀 처럼 붙지않는다

몇분간 라이터와 씨름을 하다 간신히 불을 붙여 깊이 빨아들인다

몸속으로 뜨거운 기운이 퍼진다

니가 싫어해서 끊었었던 담배지만

니 덕분에 요즘은 널 만나기 전보다 몇배 더 물고 사는 담배다

또 다시 그렇게 연관 되어 떠오르는 너의 생각과 함께 담배연기를 밖으로 뿜어낸다

 

'뭐야 저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이 동네랑 안어울리게 왠 고급 승용차가

나를 스쳐 지나 골목안으로 들어간다 

차를 따라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눈을 감았다가 뜬 사이

차는 서서히 멈춰서 정지하고 곧 운전석에서 남자가 내린다

어두운데다가 좀  떨어져있어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키도크고 말끔하니 성격좋게 생긴 남자였다

더구나 차까지 고급

세상의 불공평함을 피부로 느끼게 해줄만한 그런 남자

 

그에반해

 

'뭐냐 잠바때기 걸쳐 입고 한까치 남은 담배를 입에물고 몇시간째  덜덜 떨며 서있는 이 남자는'

 

뭐긴 뭐냐 나지

 

뒤이어 조수석에서 비틀거리며 한여자가 내린다

술이 좀 많이 취한듯한 여자

뉘집 딸이길래 이렇게 늦은시간에 술에 취해 차에서 내리는거야

제법 이쁘게 생겼다

 

너네

가만 누구라고?

바로 너네

낯이 익다 했더니

바로 너다

제법 이쁘게 생겼다 했더니

바로 너였구나

 

난 입에 물었던 담배를 바로 뱉는다

그리고 발로 밟아 꺼버린다

니가 싫어했던 담배니까

그곳에서 여기가 잘보이진 않겠지만 니가 싫어했던 담배기에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밟아서 끄고 있다

 

너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추위에 내 입이 얼어 붙은건지 아님 목이 얼어 붙은건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너의 이름을 부를수가 없다

보고싶던 니가 내 시야에 들어왔는데

너의 이름을 부를수가 없다

 

그 불공평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고 웃으며 너와 대화를 하고 있구나

불공평 남자는 잘모르나보다 니가 얼마나 담배냄새를 담배연기를 싫어하는지를

녀석아 그렇게 가까이서 담배피지 말라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비틀거리던 넌 왜 녀석의 품에 안기는걸까

비틀거리던 넌 왜 녀석에게 키스하는 걸까

 

 

'뭐야 너 담배냄새 싫어하는거 아니였어...?'

 

 

갑자기 따뜻해진다

물론 눈 뿐이었지만

따뜻해진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넘쳐 흘러 내리고있다

그 따뜻함은 눈에서 시작해 뺨을지나 턱까지 흘러 내리고있다

니가 지금 몇분동안 계속 나보다 더 잘난 그 녀석과

쉬지않고 키스하고 있다고 해서 이러는건 아니다

니가 키스를 잘하는거 누구보다도 잘아는 나니까 이해할수 있다

 

 

'바보야 추우니까 그렇게 오래 하려면 차 안에 들어가서 하라고....'

 

 

 

그렇게 마음속으로 너에게 말하는 나는

입이 목이 얼어붙어  마음속으로 밖에 너에게 말할수 없는 나는

어찌된일인지 얼어붙지 않은 두눈으로

펑펑 따뜻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