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이퍼

페이퍼 [04호]사람이 내리는 날 2004-11-27 11:54:00





 
찬바람이 매섭게 지나가고 난 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고층 아파트 맨 꼭대기층은 아니지만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본 눈 내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좀더 하늘에 가깝기 때문일까?
 
 
베란다의 창을 열었다
 
차갑고 촉촉한 바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바람에 나의 머리는 날리고 있었다
머리를 진정시키고 살며시 바지 주머니속에 꽂아두었던 왼손을 빼내 밖으로 손을 뻗어본다
그러자 눈송이가 하나 둘 나의 왼손위로 내려앉는다 
 
 
'뜨겁다...'
 
 
손에 내려앉은 눈송이가 녹아 바깥쪽으로 흘러 내릴때마다 뜨거움이 전해졌다 
점점 견디기 힘든 뜨거움이 뼈속까지 스며들었다
손이 눈처럼 녹아버릴것 같았다
더 이상 참을수 없어 손을 안으로 들였다
손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다시 왼쪽 바지주머니속에 꽂아둔다
 
서서히 주머니 안쪽으로부터 젖어들기 시작했다
 

몇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다
 
창을 닫지 않은체로 눈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다
머리가 또 다시 날린다
더 이상 머리를 진정시키려 하지않는다
어차피 곧 또 날릴게 분명했다
 
하늘위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눈에도 입이 달렸나?'
 

역시나 그럴일은 없겠지
 
곧 베란다 밖으로 한 여자의 얼굴이 보인다
눈이 마주친다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이 내 눈동자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눈동자속의 나는

더욱 심하게 머리가 날리고 있었다

 
'참 심하게도 날리네..'
 
라고 잠시 생각한다
 
그녀의 머리도 날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랫쪽에서 짧고 경쾌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어느새 그 충돌음의 울림에 베란다 창은 흔들리고 있었다
 
 
 

올해는 눈 뿐 아니라
 
 
사람이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