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페이퍼

[12호]飛行 2005-10-21 20:54:00


언제부터인가 저는 날고 있습니다

하염없이 바람에 이끌려 목적지도 없이 정착지도 없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도 알지못한채

하염없이 바람에 이끌려 목적지도 없이 정착지도 없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저 날아가는것이 너무 즐거워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줄곳 밤낮 가리지 않고  날기만 하다보니 점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즐거운 일도 계속 반복되다보면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즐거운 비행도 계속되다보니  슬슬 지겨워지고  이런저런 잡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밤이 찾아오고

차가운 가을의 밤바람이 나를 때려도 나의 의문은 여전히 멈추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게 이렇게 힘든 일일까요

 

저 먼곳에선 휘황찬란한 네온싸인들과 불빛들이 나를 반깁니다

하지만 난 관심갖지 않습니다

어차피 또 바람이 불고 바람이 날 밀어내면 멀어져 갈것이고 

더 이상은 보이지 않게 될것이고

어쩌면 다시는 마주하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관심갖지 않는것이 좋다고 잠시 생각합니다

 

밤이지나고 찾아온 새벽은 무척이나 짧습니다

너무 고요하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짧은 새벽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아침이 되어버립니다

 

저는 지금 좀더 낮은곳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새벽이 지나면서 몸이 살짝 젖어버린 탓인지 몸이 무거워진듯합니다

높은곳에선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건 저에게 절호의 기회라 생각합니다

나에대해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물어볼수있으니까요

내가 누구인지 알수있을지도 모릅니다

 

"죄송한데 저에 대해 말씀해주실수 있으신가요?"

 

바쁘게 걸어가시는 한 아주머니에게 최대한 다가가서 묻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뒤한번 돌아보지 않은채 갈길을 가버립니다

 

이번엔 벤치에 앉아있는 한 아저씨에게 다가갑니다

다시한번 전 말합니다

 

"죄송한데 저에 대해 말씀해주실수 있으신가요?"

 

아무반응이 없던 아저씨는 살짝 제 쪽을 바라봅니다

전 기대에 찬 목소리로 한번더 말합니다

 

"죄송한데 저에 대해 말씀해주실수 있으신가요?"

 

하지만 아저씨는 곧 고개를 돌려 다른쪽을 바라봅니다

그리곤 일어나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왠지 서글퍼집니다

너무 큰 기대를 했기때문일까요

 

또 다시 바람이 불어옵니다

저는 서서히 다시 높게 날기 시작합니다

밑으론 엄마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는 아이가 보입니다

아이는 절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 저를 손가락으로 가르킵니다

 

"엄마 저거 뭐야? 막 머가 날라댕겨"

 

"어? 저게 뭐지? 깜장비닐봉지네 .바람 정말 많이 부나보다"

 

 

검정 비닐봉지

검은색의 비닐봉지

비닐로 이루어진 검은색의 물체

 

제가 무엇인지 제가 어떻게 해서 날아다니고 있는지

그래도 혹시나 제가 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저의 존재는 그런것과는 너무나 다른 무언가 였습니다

날개가 없다고 날수없는건 아니였네요

 

아까 그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물었던 저의 질문들은

그 분들에겐 겨우 비닐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로 들렸을거라 생각하니

웃기면서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바람은 또 다시 어디론가 날 이끕니다

얼마나 더 날았을까

 

어느새 하늘에서 물방울들이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곧 수많은 물방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방울 한방울 제 몸에 떨어질때마다

전 알수없는 소리를 내며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척이나 차갑습니다

 

왠지 다시는 날수없을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 자신에 대해 알게되어 잠시 기뻤지만

그래도 크게 달라지는건 없는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날고 있고

언젠가는 떨어져버리는 거겠지요

 

 

이대로 이대로 떨어지고 나면

지금까지의 날았던 기억들은 모두 추억으로 남는걸까요

아님 이대로 잊혀지는 걸까요

 

물방울들은 더욱 거세게 내려치고

여전히 알수없는 소리를 내며 더욱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있지만

더 이상 물방울들이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