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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호]理由 2005-06-23 11:25:00






하늘을 바라봤다
회색의 하늘에서 하얀눈들이 쉴새없이 멈추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옥상?'
 
'나는 이 곳에 왜 올라온 것일까'
 
 
'102동 1304호'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나는 급작스런 두통에 잠이 깨었다
머리속에선 '윙~'소리와 함께 조그맣게 옥상으로 올라오라는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일어나 물을 한잔 마셨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난 마치 뭔가에 홀리듯 옷을 줏어 입었다
그리곤 현관문도 잠그지 않고 이유도 알지못한채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갔다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그 안에는 이미 10여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모두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좁은 틈을 비집고 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
엘리베이터에선 인원초과라는 '삑삑'소리가 울려댔지만
문은 그대로 닫혔고 엘리베이터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숫자버튼을 바라봤다
유일하게 17번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 순간 어느샌가 내 자신이 다른사람들 처럼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두들 17층에서 문이 열리자 내려 18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올라온 18층은 옥상
그 곳에는 지금 도착한 사람들 말고도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이미 올라와 있었다
 
'나는 이 곳에 왜 올라온 것일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사람들은 모두 일렬로 옥상의 끝에 서있었다
그리곤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끝없이 내리는 눈
바람은 더욱 거칠게 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던 고개를 내리는 순간
한명씩 옥상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아까는 모두 웃고있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웃고있는사람 울고있는사람 무표정인사람
모두 제각각이었다
뒤를 돌아봤다 사람들이 옥상을 가득 메우고있었다
추락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나는 이 곳에 왜 올라온 것일까'
 
다른사람들이
나에게 그 정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계속 해서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그 정답을 알것 같았다
 
 
'내려가기 위해서'
 
 
더 이상의 이유는 없다
 
 
 
어느덧 내 차례가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한다
가슴이 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나도 사람인걸
설레이는건 어쩔수 없어
하지만 난 아까 그 여러 표정 사람들중 웃는 사람들 쪽에 포함됐다
 
맞은편 101동 옥상을 바라본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 여자아이 하나
우리쪽을 바라보고있었다
뭐 아무렴 어때
그건 그다지 중요한게 아니였다
난 내려갈거다
 
하늘을 다시한번 바라본다
내리는 눈이 얼굴에 닿자마자 녹아버려서 물방울이 되어버리고
거센 바람이 불자 그 물방울들은 바람에 맞아 흩어져버린다
물방울 마저 금방 날 떠나버리는 구나
 
무언가를 떠올려보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잠시 아래를 내려다본다
까마득한 바닥
내가 떨고 있는건지
바람에 내가 흔들리는 건지는 알수없지만
나의 몸이 몸시 흔들리는 것만은 분명했다
 
다시 맞은편을 바라본다

여자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지금은 남자아이 혼자 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고있다'
 
멀어서 잘보이진 않았지만 그 남자아이는 웃고있는것 같았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모르겠지만 웃고있었다
하지만 나도 웃고있는건 마찬가지 아닌가

'여자아이는 어디로 간걸까'
 
별걸 다 궁금해 한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보이기 시작한다
땅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땅이 되어버린다
내가 뛰어 내린건가
눈앞으론 다양한것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기 시작하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력한 눈보라가 나를 때리기 시작한다
 
무심코 다시한번 맞은편을 바라본다
나보다 무언가 앞서 먼저 밑을 향해가고 있다
 

 
'거기 있었구나'
 

 또 다시 난 웃어버렸다


 
저 먼 곳에서 충돌음이 들려온다
 
 

어느덧 내 눈앞엔

회색 아스팔트가 펼쳐지고 있었다